제276호 2022년 6월 1일

나는 남향집이 싫어요

  • 제274호 3면
  • 입력 : 2022-04-01 17:19
  • 수정 : 2022-05-03 17:19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단일화’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름도 비슷한 두 당의 후보가 결국 단일화를 했다. 그런데 뭐가 단일하게 된 것일까? 당을 합친 것도 아니고, 후보 한명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숫자 하나가 지워졌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좀 다른 차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임시로 이를 ‘상징적’이라고 불러보자.

사실 물리적으로 달라진게 없다는 말은 억지스러운 이야기이고, 무엇이 단일화 되었다는 것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안다. 이미 상징적인 세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징적인 세계를 잘 안다. 물리적인 세계 자체보다 상징적인 세계가 더 중요하고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상징적인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명품 가방이 가죽 때문에 비싼게 아니라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그런데 유달리 건축에서는 물리적인 세계에 집착하는 것 같다. 설계비가 물리적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다 알지만, 그래도 물리적으로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옷을 사거나 집을 사거나 차를 살 때 건축사들은 상징적인 것을 살핀다. 브랜드를 보지 않고 기능만 살펴 구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회적인 위치를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설계공모에서도 그렇고, 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것이 남향과 코어위치, 복도 길이 같은 것들이다. 전부 물리적인 세계의 이야기다. 다들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데, 정작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닌데, 사람들은 남형 좋아하는데? 뭐 그렇기는 한데, 조건이 있다. 아파트에서 창을 내는 것 같이, 무작스럽게 단순한 디자인이라 남향이 아니면 남쪽의 빛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북향으로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도 남쪽 빛을 끌어들이는 사례는 넘치게 많다. 서향이 좋은가 남형이 좋은가라는 질문에는 당연히 남향이 좋다 할 것이다. 애초에 함정을 파놓은 질문이니 답도 정해져 있다. 이렇게 함정 질문을 해보자. 남향 집을 설계한다고 설계비 더 받는가? 이런 물리적 세계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상징적인 세계를 더 잘 알고, 그 세계의 이야기를 훨씬 좋아한다. 예컨대 돈이라던지 스타일이라던지 하는 것 말이다. 그러니 제발 물리적인 세계의 일차원적인 이야기는 그만 하자. 더 필요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때가 되었다는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이다. 이 사회의 여러 산업 중에서 건축은 너무나도 뒤처졌다. 인테리어에 뒤쳐진 지도 오래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아니라, 사전 컨설팅 비용이 설계비 요율보다 더 높다. 사람들이 음식에 관심을 갖다가 옷에 관심을 갖고, 차나 명품에 관심을 두었다가 이제 사는데도 신경을 쓴다. 생활환경에 돈을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축인들은 물리적인 세계에 빠져 변화를 못보고 이 거대한 시장을 모두 놓쳐버렸다. 요즘에는 건설사나 자재 생산업체가 인테리어 한다고 광고를 하고 있는데, 이게 어떤 사정인지 부산의 건축사들이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향보다 라이프스타일을 먼저 이야기하는게 좋다는, 우스갯소리를 해야 때가 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상징적 세계가 물리적 세계를 압도한지 오래이고, 이것이 실질적인 돈으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다. 사실 남향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남향과 남쪽 빛은 전혀 다른 문제이고, 디자인 과정에서 남향이라는 것이 필요한 선택이기는 해도 무조건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안다. 그런데도 남향을 말하는 것은,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려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무조건 옳은, 다시 말해 건축의 ‘상징적 올바름’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실 남향 이야기는 물리적 이야기가 아니라 교묘하게 포장된 상징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깔아뭉갤 때 사용하는 상징의 하나라는 것이다. 게다가 남향을 쓰기 좋은 것은, 건축인들이 일반 시민들에게 남향이 좋다고 하면 다들 쉽게 속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이들 속여먹는 대상이 또 클라이언트고 공무원 아니겠는가?

건축은 오갈데 없는 처지다. 누가 건축이 중요하다고 알아주나? 누가 설계비를 충분히 주어야겠다고 말하나? 인테리어 하는 사람에게는 내게 알맞은 스타일을 만들어줬다고 흔쾌히 돈을 내지만, 설계비는 싼 것이 이득이라고 다들 말하지 않는가? 건축사 여러분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돈을 쓰지만, 내가 필요한 일은 되도록 돈을 아끼려 하지 않는가? 생활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건축사이지만, 이미 시장을 빼앗겨서 사람들은 인테리어가 생활공간을 만든다고 한다. 이런 인식이 정착되어 부산의 건축 영역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실을 다들 직접 느끼고 있을 것이다.

건축에는 물리적 세계의 이야기인 듯 하지만, 사실은 물리적 세계와 상징적 세계를 두세 번 꼬아서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상징이 많다. 남향도 그렇거니와, 어린이 안전이라던지, 그 외에도 사람들과 다툴 일이 생기면 던져보는 몇 가지 단어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속는 것 같아도 다들 무슨 이야기인지 안다. 건축사들이 물리적인 건축의 세계에 매여 있는 동안, 세상의 상징은 너무나 발전해서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부산건축사회의 클라이언트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살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나는 사람들이 상징적인 세계를 얼마나 크게 펼쳤는지 우리 건축사들이 잘 알았으면 한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임성훈 교수 ㅣ 동명대학교 건축학과

  • - 임성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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