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호 2022년 5월 1일

건축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벗자

  • 제275호 3면
  • 입력 : 2022-04-29 13:07
  • 수정 : 2022-04-29 13:16

부산을 예술 문화의 불모지라고 한다. 건축문화는 어떨까? 건축에다 문화라는 말을 붙이는 건 시민이 건축물을 향유하는 가치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 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건축물을 지으면서 쓰고자 하는 목적에만 충실하면 그만이라 여긴다면 문화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문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그만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가 K문화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K-POP, K-MOVIE, 한복, 음식 등 한국 문화가 지구촌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건축은 세계적인 건축상을 받아보지 못하는 부끄러운 현실에 있다. 많은 세계인이 한국을 찾아오고 있지만 건축물이 관광의 목적인 경우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건축문화는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ㅣ지방은 왜 그래요?

지방자치제가 막 시작되었던 1995년의 일이다. 모 건축잡지사에서 전국의 단독주택을 취재하여 단행본을 만들면서 나에게 원고를 써달라고 했다. 그런데 원고청탁의 주제를 살펴보니 기가 막혔다. 전국을 돌면서 단독주택을 취재했는데 지방의 수준이 수도권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데 왜 그런지 글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뻔한 사실을 두고 변명을 해달라는 것인지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해명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청탁이었다. 잡지사 입장에서는 주요고객인 지방 건축사의 팬 서비스 차원에서 책에 싣기는 하지만 책의 격이 떨어지니 그 변명을 들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지방의 건축사를 대표해서 변명하는 글을 써야 할 처지였지만 원고 청탁을 수락했다. 글의 내용을 지방은 서울에 비해 건축물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으니 건축사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물이라고 썼었다. 그 당시 지방은 서울에 비해 건축을 문화적 가치로 여기는 상황이 아니어서 건축주의 눈높이만큼 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글의 말미에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되면 중앙과 지방의 문화적인 간극이 줄게 될 것이니 건축물의 수준도 달라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 때의 글 내용처럼 지방의 건축도 그 수준이 그 때에 비하면 좋아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서울은 세계로 향하는데 지방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해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ㅣ건축문화는 도시의 수준, 부산건축문화는?

인구 350만 명의 부산은 세계에 손꼽을 수 있는 메트로폴리스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전 세계인이 해마다 부산을 찾고 있으며 2030년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부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큰 행사로 정부에서도 애쓰고 있다. 그런데 부산을 찾는 세계인들에게 건축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로서 그들을 맞이할 수 있을까?

수십 층에서 백 층에 이르는 초고층 빌딩 숲은 거의 아파트 일색이어서 부산이라는 도시 이미지는 천편일률적이다. 도시계획의 기반 없이 만들어진 부산은 도로와 건물만 가득할 뿐 길을 걷다가 머물 수 있는 도시공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무표정한 건물 군이 앙상한 겨울 숲처럼 황량하게 도시를 채우고 있다.

부산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한다면 부산다운 도시 문화를 가꾸어서 세계인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지어지는 건축물은 건축사가 능동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끔 존중되고 배려해야 할 것이다. 부산건축상을 비롯한 구군청의 건축상의 위상을 높이고 각종 심의도 설계 건축사의 작업 의지를 존중해야만 좋은 건축물이 지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ㅣ부산건축문화를 선도해야하는 공공건축물

공공건축물이 설계경기를 통해 설계자를 선정하게 되면서 경쟁을 통해 좋은 건축물이 지어질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공정한 심사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많은 건축사가 응모하고 있으며 질 높은 작품이 선정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선작으로 선정된 설계안이 실시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건축사의 설계의도가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건축주가 되는 구군청에서 작업 과정에 개입하고, 심의 과정에서 심의위원의 간섭이 과하게 되면 설계 건축사는 작업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선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하게 되듯이 설계 건축사가 작업 의지와 소신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면 설계는 이도저도 아닌 결과가 나오게 된다. 어떤 건축물이라도 건축사의 작업 의지를 존중해주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닌 건축주가 개입하게 되면 건축사는 그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어서 작업을 소신 있게 끌고 갈 수 없다. 또 심의 과정에서 심의위원은 해당 분야에만 관여하여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만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사공은 오로지 건축사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해주면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공공건축물은 설계경기에서 당선된 안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설계되어 지어졌으면 좋겠다.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는 부산이라는 큰 도시의 새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건축사의 혼이 깃든 작품으로 건축물이 모여 풍성한 숲이 우거지면 좋겠다. 건축사가 소신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으면 부산의 도시문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잡목이 많은 산이라도 풍채 좋은 노송 한그루가 볼만한 경관을 가지는 것처럼 잘 지어진 한 채의 건축물로도 부산의 도시문화의 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건축사의 역량을 믿는 풍토로 조성된다면 우리 지역의 건축문화가 드높아지게 되고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도시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 김정관 건축사 l 도반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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