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6호 2022년 6월 1일

‘알쓸건잡’ 알고보니 쓸데없는 건축예술진흥법 바로잡기

  • 제276호 3면
  • 입력 : 2022-06-01 14:51
  • 수정 : 2022-06-02 14:54

‘건축은 기술과 예술, 공학과 미학의 결합체란다.’

1981년 대학 건축과에 들어와 첫 강의시간에 난생처음 들었던 황홀한 메시지다.

어린 마음에 잔잔한 전율이 일며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고, 동아리 여학생들 앞에선 유치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박봉 속에 연필 깎고 청사진 굽던 모진 실습생 시절을 견디게 한 위안과 신념이기도 했다. 그렇다, 매번 예술적인 결과물을 만든 것도 아니고, 걸작을 남긴 것도 아니지만, 늘 현재진행형 일거라는 소망을 품어온 세월이 우리 모두의 모습일거라 생각한다. 이런 우리의 염원이 이제야 전달되었을까? 지금 국회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토부와 대한건축사협회도 아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건축가협회가 나서 모 국회의원들과 함께 ‘건축예술진흥법’ 이라는 것을 제정하려 논란을 부추기고 있는 일이다. 우리 건축사회도 지난번 이사회에서 세밀히 살펴본 바 있다. 법 제정 보고서 첫 페이지 제안 이유를 읽고 그저 실소와 함께 ‘뒷 페이지부터는 볼 필요도 없겠구나’ 하는 허탈한 심경뿐이었다. 다음은 이 법의 제안 이유다.

 

제안 이유

‘건축물은 주로 공학적 측면에서 다루어져 왔으나 최근에는 건축예술에 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각종 건축 전시회를 비롯한 언론을 통해 건축의 예술적 가능성이 충분히 알려지고 있음. 과거 건축물을 대규모 개발을 통한 국가 성장의 상징물로서 바라보았던 공학적·기능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제는 예술의 측면에서 바라봄으로서 좀 더 좋은 생활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바, 건축예술 진흥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 이에 건축예술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문화·예술적 차원의 건축예술을 진작시키기 위한 교육 및 지원에 관한 내용을 규정함으로써 건축예술의 진흥에 이바지하려는 것임.’

건축법, 건축사법, 건축기본법,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등 기존법과의 중복과 ‘건축예술가’라는 생뚱맞은 용어를 비롯해 제정 취지의 당위성마저 모호한 많은 문제점들은 이미 지난 신문 1면 톱기사로 다룬 바 있다. 위의 제안 이유 첫 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말 이전의 건축들은 주로 공학적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왔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건축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을까?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지난 유구한 세월을 거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역사적이며 문화와 예술성을 가미한 수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져 왔다. 내 땅에 내 건물을 짓는 게 아니기에 발주처를 포함한 건축주의 독단 속에서도 눈물겨운 작업과 노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과연 이런 법이 부족해서 예술성이 한없이 뒤처지고 있을까? 그럴듯한 미사여구와 논리로 예술 진흥에 대한 이바지를 운운하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숨은 속내는 오직 한 가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건축예술인’이라는 신종 용어를 통하여 ‘건축사’가 아닌 자도 설계행위를 비롯한 건축행위가 가능하게 하자는 것 외에는 기존법에 거의 다 갖춰져 있는 내용들이다.

국토부에서도 건축은 학술적으로 건축의 3요소에 ‘미(美)’가 포함되어 있으며, 건축은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복합 학문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건축예술’이라는 용어 사용으로 건축을 예술적인 행위와 비예술적인 행위로 구분 지어 건축계에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제정안의 ‘건축예술’은 이미 건축에 예술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때 적절한 용어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이며 기타 많은 중복사항에 의해 입법의 불필요성과 반대 의견을 명백히 주장하고 있다.

그간 몇 차례에 걸쳐 본 협회와 가협회의 대표들이 모여 원론적인 입장의 간담회를 열었다지만 그 사이 국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소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어 곧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합의보다는 합의가 없는 것이 낫다. 부당함이 정당함으로 포장되면 다음번 바꿀 기회마저 없어지기 때문이다. 뜻을 모아 힘을 결집시켜야 할 때다.

진정 건축예술의 진흥과 뒷받침을 위한다면 당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눈앞의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도, 교육계도, 우리 스스로도 제발 이상한 새 것들에만 한눈팔지 말고, 오래토록 묵혀 온 고질적인 문제점들부터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태 대가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유일한 전문직, 녹록치 않은 사무소 환경과 경제 현실 속에 건축설계를 기피하는 학부생들, 그런 예비건축사를 길러내는 5년제 대학의 현 주소, 풀어야 할 숙제들, 첩첩이 산중이다.

건축사, 설계사, 건축가, 거기에 건축예술가까지 이 땅의 건축주들께 참 쓸데없는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의가, 의료예술가, 변호가, 변호예술가가 통용된다면 그땐 인정하는 수밖에.

  • - 조형장 건축사ㅣ건축사사무소 메종

저작권자ⓒ건축사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