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6호 2022년 6월 1일

건축을보다ㅣ과거 공간의 새로운 해석

  • 제276호 2면
  • 입력 : 2022-06-01 14:40
  • 수정 : 2022-06-02 14:44

2021년 봄, 창원에 조금 이상한 공간 하나를 오픈했다. 인적 드문 골목, 간판도 없는 데다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 목적 없이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곳에 작은 갤러리 문을 연 것이다. 조건으로만 보자면 어쩌다 이곳에 갤러리를 열게 된 것인지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공간. 왜 이 곳이냐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좋을까. 한가지로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이 공간을 결정하게 된 데는 주요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바인딩’은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전시 공간이다. 바인딩 오픈 전, 공간의 운영자이기 이전에 나는 작가로서 다양한 공간에서 작품 연출할 기회가 있었다. 훌륭한 전시 공간들도 있었지만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아쉬움이 남는 곳도 많았다.

일반적인 전시 공간인 화이트 큐브는 전시를 구성함에 있어 장점도 많지만 활용의 제약이나 반복성이라는 단점도 있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전시 공간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면 한 사람의 작가로서, ‘작가가 전시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작가들이 공간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면 그러한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의 일환으로 현재 ‘바인딩’에서는 전시를 진행하는 작가들과 함께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소한의 제약만을 남겨 두어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이 공간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바인딩’ 공간 운영자로서 가졌던 개인적인 바람이자 의지라면 공간 자체가 이미 가지고 있던 지역성과 서사성 역시 갤러리 오픈에 있어 흥미 있는 지점이다.

2017년. 당시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에 아트 디렉터로 참여하게 되었다. 비엔날레 기획의 일환으로 창원 지도를 그리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창원의 주택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창원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로, 전시 상황이 되면 언제든 군사 도시로의 변환이 가능한 도시다. 따라서 도시 조성 당시 만들어진 주택은 동일한 목적을 가진 비슷한 주택 건축물이 많은데, 당시 설계된 주택 건물의 지하는 전시에 벙커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많다. 시간이 흘러 8-90년대에 접어들자 개인 차량이 늘어났고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졌다. 그로인해 지하 벙커 공간은 주차라는 목적을 겸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바인딩’이 위치하고 있는 창원 가로수 길의 주택들 역시 대부분이 차고형 반지하 구조의 집들이며, 이는 현재 다양한 상업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바인딩 공간이 설계 당시에는 지하 벙커 역할의 목적을 가졌다는 사실은 내게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일반적인 전시 공간이 가지는 보편적 의미, 즉 예술가들이 자신의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이어준다는 것에 더해 이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서사와 시대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 또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공간이 만들어진 목적과 시대의 배경은 그 자체로도 이 공간을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의 한 모습이자 성격의 일부가 된다.

이런 생각은 갤러리 공사 당시 전반적인 인테리어의 방향성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는데, 기존 외부 인테리어 구성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인테리어 요소가 많았다. 그러나 공간의 의미를 재정립하게 되자 최대한 건물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건물을 구조가 드러날 수 있도록 공사 내용을 수정했다. 과거에 작업실로 사용된 흔적을 그대로 남기되 내부가 잘 보이는 통유리를 설치하여 공간과 전시가 노출되도록 했다. 또한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계단을 그대로 남겨 방문자들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도록 마련함으로 바인딩이 현대인들이 지친 일상 속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 현대인들의 벙커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공간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과 건축적 배경을 아는 것은 공간의 가치를 이해하고 애정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창원에는 오래도록 그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는 공간도 있지만 역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건물이나 공간도 많다. 그러나 모든 역사나 의미는 찾는 자들에 의해 기록되고 보존되기 마련이다. 또한 그러한 의미는 단순히 몇몇 행정가와 건축가들이 아닌 직접 공간을 향유하는 사용자들에 의해 더 정확하게 기록되기 마련이다. 단순히 유행을 따라 만들어지는 건축과 인테리어가 아닌 시대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공간에 대해 깊이 사유해 본다면 분명히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인딩”에서 시도했듯 창원 지역, 창원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한다면 지역의 정체성 또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지 모른다.

 

 정진경 바인딩 대표 

우리가 평소 잊고 살았던 소소한 것들을 예술의 시선으로 재인식하는 작업을 통해 행복과 희망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시대에 따른 대화의 방식이 변하듯  작가는 다양한 설치 및 매타 버스 공간까지 사용하며 타인과 교감하려 한다. 현 경남도립미술관 ‘Onlife’, 경주 우향 미술관 ‘바디아트비티’,  김홍도 미술관 등 다양한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 정진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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